
10월 25일, Timothy Moe가 이끄는 골드만삭스 전략팀은 한국 코스피 지수의 12개월 목표치를 12,000에서 9,000으로 25% 하향 조정했다. 올해 여러 차례 목표치를 올린 이후 처음으로 단행한 큰 폭의 하향 조정이다.

그러나 같은 보고서에는 목표치 하향과 상충하는 듯한 문장이 담겼다. “시장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펀더멘털 전망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하향 조정이 펀더멘털에 대한 뚜렷한 약세 전망 때문이 아니라, “더 보수적인 시장 밸류에이션 가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4배까지 하락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정확한 수치는 4.2배다. 이로써 코스피는 2006년부터 집계된 기록상 시가총액 1조 달러 규모의 주식시장 가운데 선행 PER이 5배 아래로 떨어진 첫 사례가 됐다.
블룸버그가 추적하는 시장 중 연초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었던 18개 시장에서는 대표 지수의 선행 PER이 5배를 밑돈 적이 없었다. 코스피가 그 기록을 깨기 전까지는 그랬다.
인도네시아와 비교하면 더 실감이 난다. 자카르타 종합지수는 선행 PER 약 8배에 거래되고 있어 코스피의 밸류에이션은 그 절반 수준이다. 이미 많은 투자자가 인도네시아 증시를 저평가 시장의 대명사로 여기지만, 한국 증시는 그보다도 약 절반의 밸류에이션에 거래되고 있다.
여기서 PER 4배는 지수 전체에 적용되는 수치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코스피는 특정 종목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비중은 한때 50%를 넘었다. 지수의 PER이 이례적으로 낮은 것은 주로 이 두 반도체 대기업의 밸류에이션이 극도로 낮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한국 반도체 업종의 밸류에이션은 시장이 이미 2027년 업종 이익의 65% 급감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익이 65% 감소한다는 것은 단순한 성장 둔화를 훨씬 넘어 심각한 불황에 가까운 수준이다. 시장은 수요 붕괴, 가격 급락, 거듭되는 이익 반감이라는 반도체 업종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기본 시나리오로 삼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 가정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판단한다.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세부 수치도 골드만삭스의 판단을 뒷받침한다. 메모리 반도체 이외 종목은 코스피 비중의 약 절반을 차지하며 선행 PER 7.6배에 거래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대기업을 제외하면 코스피의 선행 PER은 약 8.4배로, 과거 밸류에이션 분포의 하위 11% 수준에 해당한다.
PER 8배 안팎도 여전히 저렴하지만, 4배만큼 극단적인 수준은 아니다. 반도체 업종에 대한 비관론이 가격에 반영되면서 지수 전체의 PER을 끌어내린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시장의 비관론이 과도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밸류에이션만이 아니다. 주가와 이익 기대치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더 강력한 증거가 있다.
JP모건은 10월 20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10월 조정 기간에도 두 회사의 선행 이익 전망치는 계속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괴리는 메모리 반도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산업재, 금융, 헬스케어 업종 역시 이익 기대치가 계속 개선됐으며, 다만 이들 업종의 주가 하락 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한편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10월 22일 공개 발언에서 투자자들이 반도체 기업의 주가보다 반도체 가격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가격에는 하락 조짐이 없으며 추가 상승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통관 자료를 근거로 올해 한국의 총수출이 1조 달러를 넘고 경상수지 흑자는 4,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기획재정부도 10월 16일 성명에서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견조한 성장 기대, 경상수지 흑자, 기업 실적 개선은 주식시장의 펀더멘털이 여전히 탄탄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시장 하락과 자금 이동의 규모에 글로벌 금리 상승, AI 반도체 투자 관련 불확실성 등의 요인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 반영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주가는 하락하고 있지만 이익은 늘고 수출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이번 매도세는 펀더멘털보다 자금 흐름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저렴한 밸류에이션이 매수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시장을 지탱하던 수요 기반이 동시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탈하고 있다. 10월 1일부터 20일까지 외국인은 코스피 주식을 18조 1,150억 원 순매도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합계 약 14조 원으로 전체의 거의 80%를 차지했다. 10월 12일 하루에만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2조 원에 육박했고, 최근 한 달간 누적 외국인 자금 유출액은 29조 7,000억 원을 넘어섰다.
자사주 매입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2025년 8월 말부터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한국 증시를 지탱하는 핵심 수급 요인이었다. 삼성전자는 이미 자사주 매입을 완료했고, SK하이닉스도 종료를 앞두고 있다. 중요한 매수 수요 기반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레버리지 포지션은 여전히 잠재적 매도 부담으로 남아 있다. 큰 폭의 하락에도 레버리지 ETF 보유 규모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JP모건은 이들 상품에서의 자금 유출이 “놀라울 정도로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청산되지 않은 레버리지 포지션은 급락일마다 기계적인 매도 압력을 계속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레버리지 부담이 상당 부분 해소되기 전까지는 추가 매도 물결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JP모건의 결론은 밸류에이션과 기술적 지표가 강력한 저가 매수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추가 매수 주체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이 마무리되고 외국인의 매도가 이어지는 데다 국내 기관의 수요도 약한 상황에서, 시장은 매수세가 가장 절실한 시점에 핵심 매수 기반을 잃었다.
목표치 하향은 기술적이고 사후 대응적인 조정이다. 코스피는 6월 고점 대비 35% 넘게 하락했으며 지난 금요일 5,550에 마감했다. 투자심리가 이미 극단적인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 골드만삭스는 종전 목표치 12,000의 근거였던 낙관적 가정을 유지하기보다 현재 시장 상황에 맞춰 밸류에이션 가정을 조정했다. 골드만삭스의 표현대로 “더 보수적인 시장 밸류에이션 가정”을 반영한 것이다.
반면 비관론이 과도하다는 평가는 분석적 판단이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가격에 내포된 2027년 반도체 이익 65% 급감이라는 가정에 타당한 근거가 없다고 본다. 시장이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기본 시나리오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목표치 하향은 시장 심리를 인정한 것이고, 과도한 비관론이라는 평가는 펀더멘털에 대한 견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목표치를 9,000으로 낮춘 뒤에도 현재 지수 5,550 대비 상승 여력은 여전히 60%를 넘는다.
골드만삭스는 코스피가 9,000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적인 가정 아래에서도 현재 지수보다 상당히 높은 9,000을 12개월 목표치로 제시한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구체적인 선호 투자 대상도 제시했다. 전력 관련주, 산업재, 기업 지배구조 개혁 관련 기업, 국내 리플레이션과 한국 문화의 세계적 인기에 따른 수혜 기업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이들 테마에는 공통점이 있다. AI 설비투자가 무한정 확대될 것이라는 가정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스피의 PER 4배는 AI 반도체 사이클의 최악의 상황에 대한 시장 평가를 반영하는 실제 가격 신호다. 그러나 골드만삭스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PER 4배가 저렴하다는 관찰을 넘어선다. 현재 가격에 내포된 이익 65% 급감이라는 가정은 수출 지표, 반도체 가격, 이익 전망치 상향 조정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한국 증시가 직면한 문제는 외국인 자금, 기업의 자사주 매입, 레버리지 펀드라는 세 가지 매수 수요 기반이 동시에 후퇴하면서 반도체 집중도가 높은 지수를 유동성 공백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목표치를 9,000으로 낮춤으로써 이러한 수급 여건의 부담을 인정했다. 동시에 시장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지적함으로써 가격 하락 폭이 펀더멘털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주장한 것이다.
밸류에이션 회복이 언제 시작될지에 대해서는 골드만삭스도 JP모건도 시점을 제시하지 않았다. JP모건은 한 가지 조건만 제시했다. 누적된 레버리지 부담이 상당히 줄고 변동성이 진정되기 전까지는 시스템 기반 매수세가 충분한 탄력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PER 4배가 기다리는 것은 기꺼이 시장에 들어올 새로운 매수 주체다.